오늘 누워서 이것저것 보며 생각하다가 20대 후반의 내가 왜 외국인(서구권, 개인주의 문화권 출신) 남자친구를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가 생각났다. 한국인들 특유의 (라는 부정확한 표현을 굳이 쓰는 이유는 이게 한국의 문화 규범이기도 하기 때문) 알뜰살뜰하게 챙겨주는 관계 규범을 가진 연애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어.
나는 30대가 되면 내가 하는 연애의 관계적 규범을 스스로 써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대까지의 내 삶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제멋대로 굴러가는 관계들이 많았고 나는 그게 싫었다. 한편으로 나는 철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성장하는 중이었으므로 그 당시의 내가 관계의 운전대를 잡는다 한들 별로 신뢰롭지는 않았겠지만.
하지만 30대가 된 후에도 내 삶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도 주로 그런 불안정한 삶에서의 일시적인 관계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정착할 곳도 없고 정착할 사람도 없이 공부하듯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며 내가 가진 데이터는 꾸준히 늘었지만 정작 관계적으로는 그리 변한 게 없는 듯해.
어떤 사람들은 “휘둘리기 위해서” 연애를 한다. 그들은 마치 회오리바람을 만난 도로시처럼 사랑이라는 거대하고 강렬한 사건에 휩쓸려서 자신의 인생이 아닌 어딘가로 떠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올라타 자기 삶을 정거장처럼 스쳐 지나갈 뿐 어딘가에 진정으로 안착하지 못 한다. 그런 타인의 존재가 사라지고 나면 텅 빈 정거장에는 미처 충족되지 못 한 욕망들만이 쓸쓸한 낙엽처럼 남는다.
나는 내 삶이 그런 것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지는 못 했지만, 적어도 정거장 같은 삶을 살기는 싫었다. 나에게는 하고픈 일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 그것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뭔가 답이 나오리라는 blind faith를 갖고 계속 우직하게 걷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어. 그 결과로 지금의 나는 어딘가에 도착했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링크드인 피드로 엿보는 직장인들과 기업가들의 삶은 매일같이 분주하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글만 쓰는 나의 삶이 자유로운 것 같다가도, 목적지가 없는 이 자유가 내심 불편하다. 하지만 나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소속되고 싶은 것일까. 그걸 선택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일까? 몸이 아프면서 백지처럼 비워진 머릿속에 다시 뭘 채워넣어야 하나 고민해보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