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에 대한 낭만화가 심한 가사이지만 지금 내 기분이랑 비슷해서 가져왔다. 나는 T라서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 하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다양한 가설들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바쁨. 나는 많이 배우고 많이 확인해보고 나름의 검증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이런 걸 느낄 수 있는 사람.
근데 이게 정상 아닌가? 독버섯도 겉모습은 얼마든지 화려하고 예쁠 수 있어. 운명같은 느낌의 연출도 충분히 가능할 지 모르지.
“교감”에 대한 낭만화가 심한 가사이지만 지금 내 기분이랑 비슷해서 가져왔다. 나는 T라서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 하는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다양한 가설들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바쁨. 나는 많이 배우고 많이 확인해보고 나름의 검증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이런 걸 느낄 수 있는 사람.
근데 이게 정상 아닌가? 독버섯도 겉모습은 얼마든지 화려하고 예쁠 수 있어. 운명같은 느낌의 연출도 충분히 가능할 지 모르지.
내 경우에는 오히려 이렇게 “빠져드는“ 마음을 느낀 순간들은 그 사람이 나에게 개방하는(=공유하는) 개인정보(=성격,가치관,일상이 담긴 사진 등)의 선택 기준이 내 기대수준에 많이 부합할 때. ‘나는 이런걸 알고 싶어‘ 하는 지점들에 딱딱 맞는 개인정보를 적절한 형태&분량으로 나에게 공유해주며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그 판단들의 기준을 점점 신뢰하게 될 때 이 사람이 정말 맘에 든다 싶어짐.
근데 물론 이런건 그 사람이 내게 가진 감정과는 독립사건이고 단지 그 사람의 마케팅 능력이 좋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relational compatibility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어. 그래서 추가적인 검증 과정이 더 필요함.
나는 질문이 많은 타입이라서 테스트도 많이 해보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과정을 귀찮아하고 지루해하고 심지어 불쾌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그 모든 과정을 즐거워하는 것 같아. ’내가 궁금해? 나 이런것도 보여줄 수 있어, 더 보여줄게‘ 하면서 또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며 나를 기대하게 만들지. 그리고 그런 긴 과정을 거치면서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아. (물론 서로의 합이 잘 맞으면 이 과정이 생각보다 빠르게 끝남)
우리는 이제 성인이라서 10대 시절에 했던 ”수시로 찰싹 붙어있는 연애“ 같은 건 즐길 수가 없어. 서로가 아무리 좋아도 각자의 일을 해야 하고 각자의 가족을 챙겨야 하고 각자 살아가야 하는 삶의 순간들이 있다. 관계에서 그런 사각지대가 생길 때 ’그렇게 떨어져 있는 순간들에도 궁극적으로는 나와의 관계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때 ‘이 사람은 정말 꼭 잡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말하자면 내 사랑은 스칼라가 아니라 벡터여야 하고 그 벡터값이 정확하게 계산되면 그게 conviction이 되는 거야.
나는 이제 운명을 믿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지만, 벡터값으로 계산된 사랑은 신뢰한다. 나를 향해서 10km를 달려오겠다고 약속하면 정확히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 나에게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랑이야. 어른이 되어보면 알지. 이 단순해 보이는 약속이 의외로 정말 지키기 힘든 약속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