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었나 올해 초였나 멘탈이 많이 약해져 있어서 불안을 견디기 너무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보곤 했다. 그러다 보면 과거에 했던 나쁜 선택들 (“실수”가 아니라 “나쁜 선택”)이 하나 둘 떠오르고 마치 잔잔하던 호수에 돌을 던져서 흙탕물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과 스트레스로 마음이 잔뜩 흐려지곤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 나의 다리와 팔을 손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마치 엄마나 할머니가 겁에 질린 어린아이를 달래줄 때처럼. 괜찮아. 괜찮아. 피부 마찰이 있으면 옥시토신이라도 나올까 싶어서 천천히 손바닥으로 다리와 팔을 쓰다듬으며 나 자신을 달랬다. 불안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내 몸이 느끼는 감각은 외로움이었다. 그러나 나는 1인가구였고 이런 일로 엄마 품에 쪼르르 달려가기에는 좀 큰 어른이어서 그냥 이런 방법을 택했다. 옥시토신이 실제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 자신의 엄마가 되어주고 할머니가 되어주니 조금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너를 직접 구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
불안이 가라앉으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고, 불안이 심해지면 웅크리고 누워서 심호흡을 하며 나를 달랬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거대하게만 느껴지던 복잡한 문제들이 하나씩 둘씩 해결되었다. 그렇게 나는 불안의 터널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불안과 스트레스는 사람을 압도한다. 그렇게 잔뜩 압도되었을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겁에 질린 나 자신을 잘 다독여주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어른”이 잘 해야 하는 self-care의 일부다. 지금 현재는 1인가구로 살고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여 나의 아이를 그렇게 다독여줘야 할 수도 있고, 그런 순간이면 나 자신이 느꼈던 불안과 공포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나 자신의 그 감정을 기억한다면 어린 아이가 느끼는 공포를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갑자기 무슨 불안증 같은 게 발동되었는데 오늘은 그냥 1-2분만에 그게 바로 해제되는 걸 보고 그동안 내 멘탈이 많이 단련되었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또 일기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