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의사가 얼마나 힘든 직업인가 생각해볼 때가 있다. (나는 의사에게 쌓인 울분이 많은 사람 중 한명인데도.) 70대인 울엄마는 아플 때 자기 증상을 말로 잘 설명하지 못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인데 노화로 여기저기가 아파오면서 가끔씩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딸인 내가 정확한 병명을 추정해 병원을 찾거나 하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나는 내 신체의 감각을 최대한 예민하게 느낄 수 있도록 꾸준히 명상도 하고 운동도 하고 다양한 관찰과 분석의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내 증상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엄마는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설명하기 애매한 증상은 그냥 참고 넘어가거나, 의사가 진단하는 결과를 순순히 따라가다가 가끔은 손해를 보기도 하고 (의사가 잘못 진단할 때도 있으니까) 그래도 그러려니 하면서 산다. 그 대신 엄마는 의사와의 관계성을 100% 신뢰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른 방면에서 건강관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자세한 내용은 보안사항으로 남겨두고,

클라이언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서치나 컨설팅 업무를 할 때 나도 의사들과 유사한 어려움을 느낀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 자각했지만 그걸 뚜렷하게 정의하거나 설명하거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리서치 전문가나 컨설턴트가 존재한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문제를 직접 설명할 언어가 없어 리서치 보고서나 컨설팅 보고서에서 획득한 언어를 자신의 언어처럼 내부 보고서에서 활용하고 나중에는 자기가 강연도 하고 그런다.

이런 환자나 클라이언트를 보며 내가 생각하는 것은 healthcare consumerism 같은 개념이다. (이거 말고 다른 용어가 있었던것 같은데 지금은 생각이 안 나네..)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존재하는 지식 격차 혹은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환자가 지식적으로 의사에게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과연 환자는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가? 내가 헬스케어 쪽에서 다양한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유.

Reply to this note

Please Login to reply.

Discussion

No replies y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