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와서 내 책장에 남아 있는 두 개의 순정만화책을 생각해보는데 하나는 <마니>고 하나는 <러브 스파크!>라는 일본 만화. 이건 별로 유명하지 않은 거라 아는 사람 아무도 본 적 없는데 나는 10대 시절에 이 만화를 제법 좋아했던 모양이다. 일단 생각을 해보면

1. 비록 폭력을 좋아하는 조폭캐 주먹캐 여주이긴 하지만 일단 그림체가 여리여리하고 예뻐서 그런 폭력성이 딱히 폭력성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냥 실업계 고등학교의 폭력적이고 무식한 남자들을 주먹으로 제압하는 힘캐 여자애라는 설정이 느좋 (근데 또 헤어는 긴 생머리인)

2. 타마고교의 검정색 긴 치마 교복을 입고 활동적으로 뛰어다니는 사츠키의 모습이 좋았음

3. 사츠키 엄마랑 아빠도 약간 똘끼가 있는 젊은 부모인데 일본 만화•영화에서 종종 보는 인디스러운 쿨함이 있는 캐릭터

4. 짝사랑으로 고통받는(?) 센도의 모습을 보는게 즐거웠음

5. 센도의 고통(😁)을 유발하는 원인은 사츠키의 눈치없음인데 일단 연애경험은 일절 없이 몸 쓰는 것만 좋아하는 망충한 J-장녀 스타일이라 (약간 세일러문 재질인데 힘캐 장녀 속성이 더해진) 자신이 여성으로서 (즉 성애적 존재로서) 어떻게 비치는지 모르는 순진함이 있다는 점이 극적 재미를 유발

6. 사츠키-센도의 신체적인 힘 밸런스는 나쁘지 않고 둘의 첫만남도 팔씨름으로 시작. 그래서 사츠키가 강간 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눈새같이 살아도 괜찮은 것임. (물론 센도는 주먹캐이긴 해도 인격적으로 보면 딱히 그런 스타일이 아니지만) 사츠키는 자기 힘에 자신이 있어서 남자들을 딱히 성적으로 경계하지 않는 편. (오히려 다 자기보다 아래로 보는 경향이...)

7. 타마고교 친구들의 와글와글 앙상블이 좋았고 사츠키가 항상 이것저것 일을 벌이고 주도하는 스타일이라는게 재미있었다. 센도는 항상 조용히 서포트하는 스타일.

8. 사츠키는 단지 망충 주먹캐일 뿐 책임감이 없는 스타일은 아니고 오히려 동생들을 끔찍이도 아끼는 든든한 맏언니 스타일. 센도와는 속도위반 임신을 해버리긴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센도 외에는 연애 가능성이 있는 남자가 전혀 없었고 결말부에서는 이미 본인 가족과도 안면을 다 튼 센도와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에필로그에서 잠깐 등장하는 속도위반 임신 설정도 어느정도 허용이 가능하다고 생각.

유교적 시선으로 보면 좀 교육적이지 못 한 내용이라고 할 부분들도 있겠고 비평가적 시선으로 보면 사츠키의 모습이 마냥 순진한 캐릭터 디자인인가 라고 물을 부분도 있겠고 한데 아무튼 작가가 만들고 싶었던 세계의 모습이 좀 흥미로운 작품. 물론 그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보지는 않았고 그냥 좀 특이한 스토리라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여점에서 우연히 본 건데 구매까지 했고 아직까지도 책장에 남아 있으니... (다른 온갖 철학책이며 만화책이며 뭐며 다 버렸는데)

나는 고등학교 진학 때 인문계 고등학교 가기 싫어서 실업계 간다고 했다가 엄마한테 혼난 사람인데 (외고 가려고 시험도 열심히 봐놓고 외고 떨어졌다고 실업계 간다고 함 ㅋㅋㅋㅋㅋㅋ 우리동네 고등학교에 어지간히도 가기 싫었나봄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만화책에서 그려지는 타마고교의 모습이 그 당시에 학교 축제에 놀러가서 보는 실업계 고등학교들과 좀 비슷했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해야하는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좀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던 기억이 남... (실제로 내가 진학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학교 축제는 중학생 때 구경가봤던 실업계 학교 축제들보다 훨씬 재미가 없었음...)

10대 시절에 종종 가졌던 ‘어른들은 참 이상해’ 라는 주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는 만화랄지. 지금은 나도 어른이라서 마냥 여기저기 추천할 수는 없지만 ㅎㅎ 그야말로 그냥 개인적인 취향. https://series.naver.com/comic/detail.nhn?productNo=467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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