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천재는 훔친다”는 말이 있다. 피카소가 한 말이라는데 역시 그에게는 좀 양아치 바이브가 있다. 아마 그것도 그가 가진 매력의 일부겠지.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이런 말을 종종 본다. 그런데 만트라를 삼아도 하필 이런 양아치의 말을 만트라로 삼는다는게 좀... 그냥 이런 말을 하고픈 사람에게 이런 인용구가 유독 더 잘 눈에 띄는거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루종일 셧다운 모드인 위장을 채우려고 김칫국에 말은 잡곡밥을 한 숟가락 떠서 우물우물 씹다가 석사 논문 생각이 났다. 아무리 쥐어짜도 도저히 쓸 말이 없어서 빈약하기 그지없는 논문이라 제본을 할 때도 단면 인쇄를 했었다. 남들은 양면으로 써도 두툼한 책 한권이 나오는데 나는 무려 3년이나 학교를 다녔으면서도 도대체 뭘 했담. 부끄럽고 한심한 이 논문을 여기저기 나눠주기도 뭣해서 30부 정도 인쇄해둔 제본 대부분을 그냥 재활용쓰레기로 버렸다.
석사논문을 쓰면서 내가 부딪혔던 거대한 산은 심리학의 산이 아니었다. 그건 언어의 산이었다. 똑같은 참고문헌을 인용하더라도 인용의 목적에 따라서 인용문은 달라진다. 하지만 참고문헌 A에서 찾은 참고문헌 B의 인용문이 너무나 맛깔나고 좋으면 그 인용문을 그대로 베껴오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어차피 나도 비슷한 맥락으로 인용을 하게 될 텐데, 그냥 우연히 같은 문장이 나왔다고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바보같지만 현실적인 이런 질문들을 툭 던지고 허허실실 함께 웃을 수 있는 동료가 없다는 사실이 나는 참 외로웠다. 교수님이나 선배들은 이런 한심한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을 테니까. 논문을 쓰는 내내 보이지 않는 독 안에 홀로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지나친 걱정인가? 다들 이 논문의 바다를 잘 건너가는데 나만 혼란스러운가? 하지만 내게는 이렇게나 많은 질문들이 있는데...
표절한 논문으로 학위를 딴 사람들은 그런 고민의 과정을 많이들 건너뛰었을 것이다. 피카소식으로 말하자면 “위대한 예술가”가 할 법한 일을 해낸 것이다. 나는 그런 행보를 택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석사과정이 내게 준 가르침은 그런 것이었다. 정석대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그 최선이 항상 보상받는 것은 아니며, 세상은 오히려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더 쉽게 보상을 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