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모르고 살 수 있었던 누군가의 추하고 짜증나는 모습들도 고스란히 다 목격해야 하고, 만약 주거 공간이 그리 넓지 않다면 그런 감정들이 불쑥 올라올 때 나의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하기 위한 도피처로 삼을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 확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트위터에서 성소수자나 랟펨 유저들에게 고약한 불링 같은 걸 당할 때 내가 그들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건 그들이 쓴 일기에서 주거 독립을 실현하지 못 한 청년들의 괴로움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도 10대 시절에 그런 기분을 많이 경험했고 그럴 때 나의 도피처는 인터넷밖에 없었다. 나에게 인터넷이 내 동거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창구였듯 그들에게는 소셜미디어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셜미디어 밖에서도 좋은 것들을 많이 찾을 수 있는 내가 그 공간을 양보하는게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소셜미디어가 오염되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도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런 공간에서 외롭게 구명보트를 찾아다니고 있을 것이므로.

AI와 대화를 나누다가 자살을 선택한 소년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그 소년의 부모였다. 그들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그 소년은 처음부터 AI에게 그렇게까지 빠져들 작정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의 마음에 존재하는 빈 공간이 대체 어떤 것이어서 그는 결국 죽음을 선택하게 된 걸까. 하고 싶은 질문은 많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nostr:note1fs4ehw837p7yxh3vg33czw5zvlyws0c5zeyx0qyj0g4z47vksj4q6wm4q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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