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연구할 때는 (물론 전공 분야나 연구실 분위기마다 다르지만) 이런 살떨리는 기분은 느끼기 어려운데 그래서 조사회사 다니다가도 이런 살벌함(?)을 못 견뎌서 학교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나도 입사면접 때 “회사 좀 다니다가 박사 한다고 학교 가는거 아니냐”라는 떠보기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나는 대학원에 완전 정이 떨어진 상태라서 아마 표정이 매우 안좋았을것 ㅋㅋㅋ 근데 이직 준비하며 이력서 다시 보니까 그 당시의 내 이력을 보면 그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겠다 싶음. 민간 기업 이력이 진짜 거의 없고 너무나도 학구파스러운 이력서라서 ‘얘가 과연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싶었을 것

게다가 나는 석사 때도 남의 돈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본 경험은 별로 없고 우리는 돈이 너무 없어서 연구 공간이 부족했던 탓에 나는 열람실에 자리 없으면 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하기도..... 솔직히 석사생 수준의 연구는 엄청나게 어려운 기술을 요한다기보다는 레퍼런스 열심히 읽고 정리하고 분석력을 기르는 등의 기본기에 충실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 만약 내가 철이 좀 더 들어 있었다면 조사방법론 공부를 더 열심히 했을 텐데 나는 교수님이 잔소리 안 하고 선배들도 아무말 안 하길래 진짜 뇌청순 모드로 책이랑 논문만 열심히 읽었다 이거는 연구자가 아니고 걍 바보임 그래서 나는 입사면접 때도 나의 연구 역량에 별로 자신이 없었다 내가 얼마나 바보같은 석사생이었는지 스스로 너무 잘 알아서 -.- (물론 밖에서는 그렇지 않은 척 했지만 전문가들의 눈은 속일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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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내가 다닌 회사는 프로젝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서 그런 수준으로도 충분히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었고 사실 그 시간 동안 나의 리서치 역량이 질적으로 많이 발전했다기보다는 대부분 광고에 대한 흥미와 열정 그리고 내 업무에 대한 성실함으로 버틴 듯. 그래서 조사회사로의 경력직 이직은 쉽지 않았고 그 후로도 여론조사 같은 정석적인(?) 조사 프로젝트를 보면 내 안의 덜 자란 리서쳐 자아가 튀어나와서 자주 자학을 한다 🤣 매주 설문조사하고 결과값 발표하고 수많은 시민들의 데이터 문의에 답변하고 이런 업무들 나는 자신없다... 소수의 클라이언트 전화문의 응대하는 것도 빡센데

나도 원래는 사회조사 쪽에 관심이 있어서 거기로 지원할까 생각했었는데, 그쪽이 공공기관 이력과 연결하기도 좋을 것 같았고 내가 선거에도 관심이 많기도 했고.. 그런데 그쪽으로 가려면 전문적인 리서치 역량이 더 많이 필요하고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준비를 더 하기에는 취업하고픈 마음이 좀 급했고 그냥 페미코미 하면서 마케팅에 관심이 생겼고 또 외국계 회사 같으니까 일단 마케팅조사로 지원이나 해보자 하고 지원했던게 덜컥 붙어서 그래 그럼 일단 다녀보고 생각해볼까 하며 출근했던 것이...(후략)

대학교 다닐 때는 경영이나 마케팅 1도 관심없고 대기업 클라이언트를 위한 조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에 들어간다? 당연히 생각해본 적 없음. 페미니즘 때문에 온갖 광고와 영화를 아카이빙하고 분석하고 궁극적으로는 마케팅에까지 관심 갖게 된 그 과정이 없었다면 굳이 마케팅조사를 선택을 했을까... 난 지금도 마케팅 in general 정말 노관심....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신기해 도대체 뭘 해서 먹고 살 생각인지

그래도 다행히 퇴사하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내가 만약 데이터 산업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내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경영이나 경제 상식도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투자 공부도 해보고 이것저것 보다 보니 어느덧 블룸버그 애청자가 되어 ㅋㅋㅋ 딱히 투자로 돈은 못 벌었으나 학구파스러운 강점을 십분 발휘해서 내 나름대로 대응 중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제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과는 관점이 좀 다르고 그들처럼 순수학문 중심의 접근에는 딱히 관심이 없음. 이건 석박사 학위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간 기업 취업 후에 하게 되는 경험일 텐데, 기업에서 기대하는 역량과 연구자가 어필하고 싶어하는 역량의 fit이 서로 안 맞아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신입 때는 그게 이해가 잘 안됐고 내 동기들 중에도 납득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음. 그런데 데이터 산업 특히 B2B 비즈니스는 클라이언트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곳이고 그건 연구원 개인의 호기심과는 무관할 수도 있음. 오히려 클라이언트를 위해 나의 호기심을 어떻게든 쥐어짜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 독립 연구자로서의 자아가 더 강한 사람은 자기 이름으로 논문 쓰러 학교로 돌아가거나 전문 연구소로 가면 됨. 조사회사는 나 자신의 에고보다는 클라이언트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은 컨설팅 업계와 유사.

나도 박사논문 써보고 싶은 욕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지금은 딱히 그런 욕심을 낼 시기는 아닌 것 같고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 나름의 은퇴 플랜)

갑자기 왜 이런 타래를 썼는가 오늘도 또 대통령이 욕먹는 뉴스를 보았고 대선 생각이 났기 때문이지요...

나는 계엄군의 모든 행위가 미친짓에 불과했다고 보는 상당수의 진보 성향 시민들과 다르게 계엄군이 선관위 사무실에 갔던 것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입장인데, 선거 조작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조사회사들에게도 치명적인 일이라서 진상이 잘 밝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론조사 데이터가 아무리 예측력이 높았다 해도 선거 조작으로 인해 실제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온다면 그건 업계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일임.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인데 실무 담당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도 조사 프로젝트 외부적으로 발생하는 다른 사건들에 의해서 업계 전체의 평판이 훼손되고 덤탱이를 쓰는 경우도 (나는 안 겪어봤지만) 매우 많았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나도 대표님들이랑 안 친해서 잘은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