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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없는

어린

권력없는

공무원들이

모든 책임을 떠 맡는 사회.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의 죽음은 안 돼.

젊은 교사들이

몇명이나

더 죽어야 바뀔까

9.4 톡방에서 퍼온 고양시 자살하신 선생님 소식.

'6학년, 교실붕괴,

학부모난리, 9/1 담임교체

더 슬픈건 지금 ㅅㅁ초가 이 상황을 서이초랑 똑같이 은폐하는 분위기래요. 교장이 개인사(우울증)라며 선생님들 입단속 시키고 있다고, 이 소식 주변에 퍼뜨려달래요. 은폐될 것 같다고'

7월 휴직, 9월 복직.

신고를 접수한 119구급대는 즉각 현장으로 출동해 심정지 상태의 A씨에게 심폐소생술 등을 실시하며 서울의 한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지만, 병원에 도착 직후 사망판정을 받았다.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으로 근무 중인 교사로 지난 7월부터 휴직 중이었으며, 다음주 월요일(4일) 복직을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는 "유족 등에 따르면, 평소 A씨는 학교생활을 힘들어 하며 우울증까지 앓고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실제 A씨는 이번 휴직 이전에도 수 차례의 연가 및 병가를 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8월 31일에 선생님 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에서 나온 방송이라지요?

구조 안하고 죽게 놔둘거면서.

사방에서 교사들에게 침묵을 강요합니다.

교사가 죽으면 교육이 죽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학교를 다녔고 다니고 있고 다닐겁니다.

그 교육이 무너지는 소리를 같이 듣고 함께 해 주세요.

가만히 있지 말고.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인간에 대한 신뢰

결국 사랑이였다

직접 만난 인상적인 독자가 있나?

우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어떤 분은 세 번째 문장을 읽을 때부터 울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운다. 대부분 왜 우는지는 모른다. 설명도 잘 안 해준다. 우는 것 자체가 행위라고 생각하고 그게 또 나를 많이 바꾸게 했다. 20여 년 글을 쓰다 보니 소설 쓰기에 회의가 많이 왔다. 소설가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더라. 예쁘게 문장을 써서 인정받고 상 받는 사람인가. 쓰기가 점점 싫어졌다. 그때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돌아가셨다. 생전에 내가 인정받고 상 받으면 굉장히 좋아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직전이 되자 책은 눈에 안 들어왔다. 정작 필요할 때는 도움이 안 되는구나. 소설이 주스만도 못하고 주사 하나에도 못 미쳤다. 그런 회의감에서 조금씩 빠져나와 소설에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고민할 즈음 낭독회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어쨌든 소설이 ‘이 사람의 삶에 가닿는 부분이 있구나’ 알게 됐다. ‘내 소설이 그래도 그런 식으로 쓸모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걸 알게 된 거다. 제일 많이 바뀐 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다. 소설을 읽을 때 더 이상 떨리거나 부끄럽지 않다. 이분들이 잘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2020년에야 소설가 정체성이 생겼다고 했다.

소설가는 말을 다루는 사람인데 전에는 말의 힘, 언어의 힘을 잘 몰랐다. 〈일곱 해의 마지막〉과 〈이토록 평범한 미래〉, 그리고 이번 소설집을 쓰면서 말이라는 것의 힘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바뀌기 직전, 말이 먼저 나온다. '차별 철폐하라'는 말이 있은 다음에 차별이 철폐되듯이. 어떻게 생각하면 ‘말만 계속한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어, 똑같이 나빠질 거야’ 싶지만 그렇더라도 말을 다루는 사람들은 계속 그 말을 해야 한다. 소설가는 ‘이후의 세계를 상정하는 말하기’를 하는 사람이다.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좌절하고 비관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쉽다. 그런 이야기는 너무 강력해 초등학생들도 그게 낫다고 할 정도로 스며들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걸 인정하면 그런 사회가 된다. 말이 세계를 만드니까 그것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공급해야 한다. 소설가는 대안의 이야기를 계속 공급하는 사람이다.

비아냥대는 방법으로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인식의 취약점을 공격하기보다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사고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편이 낫다.

우리 모두는 취약하고 허점이 있다.

너는 틀렸다는 말은 사람을 돌아서게 만든다.

다르게도 생각해보자는 말이 더 쉽게 변화를 만든다.

국민들도 반성해야 한다.

국민들이 특정인에 빌붙어 개돼지처럼 행동하니

나라가 망해간다.

진실. 오직 진실

누구를 지지하던지

개돼지가 되지 좀 마.

지들 살기 위해 진실을 덮는 자들

수사를 하는게 업인 사람이

수사를 철저히 했다.

그런데

"니 새끼가 감히 대들어?"

라고 벌을 받게 생겼다.

상벌이 무너진 군대는 망한다

웃는 얼굴로 회의 끝나고 난 뒤,

"야, 저 새끼 뭔데 저렇게 나대?

저 새끼 뒤 좀 파서 죽여.

미친 새끼가 죽을라고 ㅋ

감히 누굴 가르치려드러...ㅎ"

그래도 역사는 면면히 발전한다.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

위대한 민족이다.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