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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조씨 Ajot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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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온 아조씨 입니다. I can communicate with Korean, English and Chinese.

그렇게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면 드 사이에 공허함이 끼어듭니다.

한국은 재난 보조금과 블록체인 백신 접종 확인 서비스를 통해 이미 CBDC의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미래는 지금 여기 이미 와 있다.

개무섭.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아내가 회사 스트레스때문에 임신이 안되어서 임신을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아내의 회사 사장님이 나와 아내에게 밥을 사주신다고 하셔서 밥을 얻어먹으러 나갔다.

아직 생존해 계신 분(이하 사장님)이기에 이름이나 업종은 밝힐 수 없음을 이해해달라.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과 거래 하시는 분이고 이 업계에서는 상당히 크게 성공하신 분이다.

사장님께서는 대략 20년전 (지금으로 보면 30년전) 전화기 한대를 가지고 오파상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오파상이란 일종의 무역 중계/관리 업체인데 한국과 외국의 무역 수요를 확인하여 이들을 중계하여 매출 당 커미션이나 원타임 커미션을 먹고 때로는 중계한 무역이 잘 일어나도록 관리까지 해주는 일도 한다 (이 경우에는 계속 매출 당 커미션을 먹는다).

하지만 이 오파상이라는게 참 파리목숨이랑 똑같다.

어차피 무역이 한번 일어나면 중개상을 바꾸는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봐라 우리가 언제 부동산 중개 업자 누구로 할지 걱정한 적 있나? 걍 중개 건 많이 가진 상가 코너 집 부동산하고 하면 됨.

(어떤 싸장님들은 자기만 이 매물을 쥐고 있다는 개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만 눈 맞으면 바로 할 수도 있는게 부동산 거래이다 )

그러다 보니 오파상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다름아닌 "인맥" 이다.

이게 어찌 보면 부패와 한 끝 차이긴 한데, 암튼 인맥이라고 해두겠다.

어차피 기업에서는 커미션 낮출것을 요구하고 모든 오파상들이 그 지시를 저항하면서 따라간다. 그러고 나서는 어느정도 업계 이익만큼이 남는 부분에서 마지노선이 생기게 되는데 이 때 되면 다들 고만고만 하기 때문에 구매 담당자와의 '끈끈함'이 결국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러한 오파상 업계에서 20년 넘게 성공하신 사장님을 본 아조씨는 그래서 그 성공의 비결을 알려달라고 하니 딱 하나 알려준다고 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시더렸다.

아 길다. 나머지는 여기서 보세요.

https://m.blog.naver.com/ajotsee/223179775369

앞으로 화폐는 “작업증명화폐(상품화폐 포함)“ 와 비작업증명화폐 로 나누었음 좋겠다. 이게 더 화폐의 본질에 가까운 것으로 보임.

비트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시장 가격을 가지는 것들이 그러함. 보편적인 현상임. 종교 비유가 와닿긴 하지만 구태여 종교까지 끌고 들어올 필요도 없음.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시장 가격이라는게 원래 그러함.

아따 오빠 노빠꾸 덤프 트럭이네 ㅋㅋ

Replying to Avatar 네딸바

[아빠는 반골이란다] - 딸에게 전하는 응원

“반골(反骨)이란, 뼈가 거꾸로 된 것을 말하며, 속뜻은 명령이나 권위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을 의미한다. 본인이 싫어하는 무언가를 마주했을때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생길법한 기질이며, 특히나 겉으로 반골 기질을 드러낼 수 없는 환경이라면 더욱 겉과 속이 달라지는 이중인격적인 면모를 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반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너의 할머니께서 하실 말씀이 아주 많으실거다. 무척이나 속상하셨던 일화가 있지. 아빠가 어렸을 적에는 어머니(너의 친할머니)께서 일을 좀 하시느라, 나의 외할머니(너의 증조할머니)께서 종종 집에 오셨단다. 돌봐주시고 먹을 것도 해주시고 숙제나 일기같은 것도 봐주셨지. 어느 날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려고 일기장을 펼쳤는데, 부엌에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어.

“숙제 다 했으면, 이제 얼른 일기 써야지!”

아빠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면서 펼쳤던 일기장을 바로 덮었단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서 딴짓을 했지. 정말 웃기지 않니? 일기장까지 펼쳐놓고 날짜랑 날씨까지 적고 있었는데, 누군가 일기쓰라고 시켰다고 그 즉시 하려던 일을 멈추다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거 같은데, 그 나이부터 이렇게나 반골 기질이 심했단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그날 밤 씩씩대며 일기장을 다시 펴고 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인 즉슨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외할머니가 일기쓰라고 시킨게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안 쓰고 버티다가 밤늦게 쓰고 있다”였어. 나중에 내 일기를 본 어머니는 그때 참 많이 속상하셨다고 얘기해주셨어.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던 아빠가 과연 원만한 사회 생활을 했을까? 물론 사회 부적응자라고 할만큼 교우 관계를 비롯한 사회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종종 힘든 순간들이 찾아왔단다. 본격적인 시련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부터였어. 사회 초년생 시절, 내 눈에는 부당한 일들이 참 많았는데 그런 일들 앞에서 “좋은게 좋은거지”, “일단 시키는대로 해보자.”하는 것은 젊고 혈기 넘쳤던 나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던 선택지였단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갖는 나에 대한 이미지는 극과 극이었지. 누군가에게는 “하..정말 말 안듣는 xx” 또 누군가에게는 “줏대있게 끝까지 밀어부치는 인간”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직장 상사들에게는 전자였어. 그렇게 몇년간의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나는 마치 “불합리한 세상과 싸우는 외로운 쌈닭”이 되어, 많은 적을 만들게 되었단다. (물론 친구도 많이 만들었고) 그러다가 결국 지치는 순간이 왔고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한계가 온 걸 느끼게 되더라.

“왜 이렇게 x신같이 일하지?”

“왜 이렇게 다들 타성에 젖어있지?”

“왜 다들 아무 말도 안하지? 내가 이상한건가?”

마침내 나는 한국 사회라는 곳을 ‘내게는 맞지 않는 곳’이라 멋대로 규정해버리고 유학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단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무모한 결정이었어. 해당 분야에 전문성도 별로 없고, 그 지역에는 아무 연고도 없고, 유학의 끝에는 그 어떤 것도 보장되어있지 않은데, 당시 인생 테크트리는 이미 상당히(결혼 + 직장생활 N년) 와버렸고... 그때 내가 내린 결정이 충분한 심사숙고의 결과인지, 충동적인 선택의 결과인지, 새로운 세상을 찾아 탈출구를 찾은건지, 단순히 지금의 현실이 너무 싫어서 도피를 한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아직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가득했던 때라, 설렘과 두려움을 반반씩 안고 모험을 시작했단다. 그 이후의 여정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여기에 전부 담을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말해 무수히 많은 가시밭길 속에 간간히 꽃길이 있는 험난한 행군이었어, 돌아보면 안쓰러움과 뿌듯함이 복잡미묘하게 섞여있는 것 같아. (당연하게도 힘든 유학생활 중 생긴 우리딸, 그리고 함께한 시간은 하늘이 엄마아빠한테 준 가장 큰 선물)

한국이라는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 찾아간 세계에서 느낀 좌절과 희망. 그리고 거기서의 도전과 실패, 성공. 어쩌면 이 경험을 통해 나의 반골 기질은 중요한 변화를 겪었던 것 같아. 지금도 주어진 현실이나 정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일방적인 명령이나 주입에 불복종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어. 이런 생각을 추가로 해보게 된거랄까?

“저 사람이 합당하지 않은 지시를 내리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러한 정보는 어디로부터 오는걸까? 누가 이러한 정보를 어떻게 유통시키고 있는 것일까?”

즉, 명령에 대해 본능적으로 드는 불쾌감을 조금은 누르고 어떤 맥락이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아마도 이것은 자신감에 넘쳐 항해를 시작했으나, 수많은 풍랑과 암초를 만나 개고생하면서 “내 생각은 항상 틀릴 수 있는거구나.”를 깨닫게 되면서 바뀐 것 같아.

특히 아빠가 그토록 바라던 불합리하지(해보이지) 않는 세상은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이 형성된 연유가 있는 것이고, 그토록 싫어했던 불합리해보이는 세상조차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게 정말 큰 수확이었지. 그때부터는 합당함과 불합당에 대해 매우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어.

“합당해보이지 않는 세상의 그 불합당함마저도 어떤 배경과 역사가 있는거구나. 합당함과 불합당함의 구분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표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구나.”

그래서 지금은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최대한 “건조하게” 인식하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어. 아무리 눈앞에 일어나는 일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잘못돼보이더라도 그 뒤에는 어떤 배경이 숨어있을지에 집중하고 있는데,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 어떤 권위적인 상사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지시를 내릴 때, 뉴스를 틀었는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때, 커피 한잔 주문하려는데 일 못하는 직원이 너무 답답해 보일 때 등등 하루에도 몇번이나 킹받는 순간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무엇이 너로 하여금 너를 그렇게 만들었니?”라는 질문을 던지면 마음의 평점심도 잘 유지되고, 문제의 본질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 무엇보다 문제의 본질에 가까워지면 “나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매일 부딪히는 문제들을 조금은 더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것 같고.

반골이란 단어의 그 유래는 상당히 부정적이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뜻으로 쓰인다는 얘기도 이쯤에서 하면 좋겠어.

“이와 유사한 용어는 마이페이스, 유아독존, 벽창우 등이 존재하지만 독선적이거나 고집이 세다는 의미보단 권력이나 명령에 반항한다는 쪽으로 자주 쓰이며, 옛날에는 역적에게 붙는 부정적인 단어였지만 후대에는 권위에 저항하거나 불복종한다는 중립적인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그 권위가 정당하지 않을 경우엔 오히려 반골이라는 말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투사'라는 찬사에 가깝게 쓰일 때도 있다.”

이처럼 반골인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야. 오히려 좋은 점이 많을 수도 있어. 특히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나 주장, 심지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어떤 명제에 대해 의문을 품고 실제로 확인을 해보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지. 이건 반골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뛰어난 점이라고 말하고 싶어. 지금 세계가 파편화되고, 검열이 보편화되고,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억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그러한 능력이 더욱 더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아빠는 믿는다.

살면서 언젠가는 너가 가진 반골 기질에 대해 회의감이, 자괴감이, 우울감이 들 수도 있을거야.

“왜 남들은 별 문제없이 그렇다그렇다 넘어가서 편하게 사는 거 같은데, 나는 왜 이러지?”

한때 매일같이 내 머릿 속에서 나를 괴롭혔던 생각이란다. 행여라도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때 이 글이 너에게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가 가진 그 기질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게 아빠가 해주고 싶은 말이란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이든 완전히 좋거나 완전히 나쁘거나, 완전히 선하거나 완전히 악한 것은 없어. 반골 기질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나의 기질, 너의 기질 모두 그 자체는 중립적인거야. 어떤 상황과 결합되어 발현되느냐에 따라 너에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 수도, 그 반대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어. 그러니 항상 지금의 모습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앞으로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쌓으며 성공의 달콤한 과실도 누리고, 실패의 쓰디쓴 약도 먹어가며 한발한발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여정에 아빠는 항상 함께 할테니 늘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지금의 시간을 재미있게, 행복하게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사랑해.

아빠가.

지울수도 수정할 수도 없앨 수도 없는 미래에 보내는 편지.

그렇기에 그 메시지가 더 값집니다.

토론토 사는 캐나다 사람이었는데 그 동네에서는 이 이슈가 꽤 큰 이슈였나 봅니다. 막 화를 내더라구요 ㅋㅋㅋ

전화 영어 수업하는데 주제가 애플. ㅐ이라서 전자 결제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영어교사가 정부가 사람들 계좌 동결한 이야기 하길래 “니 혹시 캐나다 트럭커 시위 이야기하노?” 하고 물어보니 그렇다며 정부의 통제에 대한 부당함을 한참 이야기 하길래 “니 비트코인 아노?” 시전함 ㅋㅋㅋ 오늘의 오랜지필은 캐나다에 사시는 영어교사 브루너 씨에게 먹여보았습니다 ㅋㅌ

그래서 밝은 인터넷 세상에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르면 안됨. 바보들이나 하는 짓.

편의점 밤 열두시.

오늘도 대여섯개의 삼각김밥이 기한을 남기고 폐기 되어 진다.

말이 좋아 폐기지, 사실 수거 후 버리는 프로세스이다. 남는 삼각김밥이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간혹가다 나같은 알바가 점주 허락하에 폐기직전 먹는 경우도 있지만 이제 이것도 지겹다. 그냥 폐기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오늘도 남은 삼각김밥을 폐기할려고 하려는데 갑자기 한 신사가 들어오면서 말을 건낸다.

"버려지는 삼각김밥을 싸게 사고 싶습니다. "

규정상 폐기된 제품을 다시 팔 순 없다. 팔았다가 먹고 탈나면 안되는거니까.

"안돼요, 폐기된 물건은 규정상 그럴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폐기가 얼마 안남은 삼각김밥을 싸게 파시는건 어떻겠습니까? 제가 폐기 시간 10분전에 사겠습니다. 다만 반값에 주시죠"

들어보니 나쁜 조건은 아니다.

나도 규정을 어기는 것이 아니고, 그도 만족하는 좋은 거래이다.

하지만 가격을 깎는 것은 점주의 허락을 미리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점주분과 한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다시 찾아오지요."

다음날 신사는 밤 11시 50분에 다시 편의점에 찾아왔다.

"오늘은 폐기 예정인 삼각김밥을 살 수 있을까요?"

점주와는 이야기 해두었다. 반값에 팔 수 있다.

잠시 후 신사는 남아있는 삼각김밥들을 쓸어담아 봉투에 넣고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나저나 이 신사는 왜 김밥을 사가는 것일까. 나는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본다.

"그거요? 그건 정력에 좋은 바이오 드링크 성분을 추출하기 위해서랍니다. 이미 중국과 미국에선 핫한 아이템이에요"

뭔가 이유가 이상하지만 일단 넘겨준다.

정력에 좋은 바이오 드링크 성분이라니.

뭐 그래도 가게 입장에선 어차피 버릴꺼 돈으로 바꾸는거니까.

그리고 그 신사는 매일 이렇게 와서 남은 삼각김밥들을 쓸어간다.

끌고온 트렁크에 삼각김밥을 넣을 때 슬쩍 보니 온동네 마감 직전 삼각김밥들을 엄청나게 쓸어가는 듯 싶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언젠가 부터 유튜브에 신사가 이야기했던 바이오 드링크 이야기가 화제이다.

이 바이오 연료는 정력에 끝내주는데, 오직 편의점의 삼각김밥으로만 만들어 진다고 한다.

여친이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날게 돋친 듯 팔려나간다.

특이한건 바이오 드링크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이미 공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조에 특별한 기술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바이오 드링크의 생산비를 결정하는 삼각김밥의 가격과 바이오 드링크의 판매가격이 이 바닥 바이오 드링크 생산자들의 주요 경쟁 포인트라고 한다.

뭐 쉽게 말해서 삼각김밥을 싸게 조달하는게 키 포인트라는 것이겠지.

참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동영상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1년이 또 지났다.

요즘 세상은 바이오 드링크 뉴스로 가득하다.

기적의 정력제라고 불리는 바이오 드링크. 최근 유행은 70이 넘은 실버세대들의 임신과 출산이다. 지금까지 세상의 상식은 시간이 인간의 생식능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었지만, 바이오 드링크로 인간의 생식능력은 영원히 보존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바이오 드링크 생산을 금지시키는 결정이 며칠 전 일어났다.

이유인 즉슨 바이오 드링크 산업은 도덕적으로 무책임하기 때문이란다.

도대체 바이오 드링크와 도덕이 무슨 상관인가. 유럽의 기아구제단체들이 말하는 이유인 즉슨 지구에 이렇게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은데 삼각김밥과 같은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정력 음료나 만드는 것은 인도적인 처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애새끼(ESG)들은 편의점을 안와본 것일까.

바이오 드링크는 폐기 되기 직전의 삼각김밥만 이용해서 만들어지는 것을 모르나?

어쨌거나 삼각김밥만 있으면 바이오 드링크 제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한때 삼각김밥 제조사와 신사들이 합심해서 바이오 드링크를 제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삼각김밥 조달 비용의 문제로 인해 모두 망해버렸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새로운 삼각김밥이 폐기 직전의 삼각김밥보단 당연히 비싼거 아니겠는가!)

이런 멍청한 애새끼(ESG)들!

그렇게 다시 3년이 흘렀다.

오늘 한국에 남아있던 마지막 바이오 드링크 회사가 문을 닫았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 아직도 기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이러한 비 인도적인 비즈니스를 용납할 수 없다는 새로 뽑힌 대통령의 긴급조치 덕분이었다.

대통령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미친놈.

유럽연합은 한국의 담대한 결정에 대한 찬사를 서한으로 보냈고, 한국은 유럽연합에 이어 (자칭) 두 번째 도덕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유럽과 한국이 이렇게 도덕적인 결정을 내려도 세계에 기아로 죽는 사람들이 줄진 않았다. 어차피 폐기되는 삼각김밥을 아프리카에 가져다 줄 수도 없었으니까. 도덕적인 나라들의 숫자는 날로 늘어만 가고 있지만 기아로 죽는 사람들의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이상한 세상이다.

사람은 죽어나가는데 도덕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나저나 그건 그렇고.

나는 새로 생긴 여친을 위해 편의점에 남은 마지막 바이오 드링크를 조용히 뜯어 마셨다.

누가 뭐래도 내 생식능력은 내가 보존한다.

딩동댕~ 밝은 인터넷 세상에선 익명이 존재하지 않음